日 강제동원 피해자 주금용 할머니 별세...생존자 2명만 남아
日 강제동원 피해자 주금용 할머니 별세...생존자 2명만 남아
  • 정인옥 기자
  • 승인 2024.03.18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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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했지만 日 비협조로 5년째 공전 중 별세
10대 어린 나이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군수회사로 강제동원됐으나 광복 이후 배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관련 소송을 이어온 주금용 할머니(사진)가 지난 17일 별세했다. 향년 96. (사진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뉴시스
10대 어린 나이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군수회사로 강제동원됐으나 광복 이후 배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관련 소송을 이어온 주금용 할머니(사진)가 지난 17일 별세했다. 향년 96. (사진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뉴시스

 

[주간시사매거진=정인옥 기자]일제강점기10대 어린 나이에 후지코시 회사로 강제 동원됐던 주금용 할머니가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은 18일 최근 폐호흡기가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었던 주 할머니가 전날 영면했다고 밝혔다.

전남 나주 태생인 주금용 할머니는 2년제 갈립학교를 마치고 나주대정국민학교에 전학을 갔다. 할머니는 나주대정국민학교 재학 중 만 16세 때인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에 위치한 후지코시(不二越) 회사에 주위 친구들과 함께 강제동원됐다.

후지코시는 전국에서 1,000명이 넘게 강제 동원된 근로정신대 동원 최대 사업장으로, 군수품에 사용되는 금속 제품 절삭 공정에 피해자들을 투입했다.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며 노역에 투입된 주 할머니는 1945년 광복된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 할머니는 2020년 구술기록집 '배고픔에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하얗게 핀 가시나무 꽃 핥아먹었지'를 통해 "일본 가서 돈도 벌고 좋다고 얘기를 해서 그 꾐에 넘어갔다. (당시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우리가 일본 놈한테 속아서 왔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고인은 어린 시절 당시 후지코시 공장 또래 아이들과 힘든 공장생활을 신세한탄 하며 불렀던 구전노래를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등 어린 시절 혹독했던 강제노동에 대한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2018년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에 배상 판결을 내린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2019년 4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가 추진한 공익소송 일환으로 후지코시 회사를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비협조 등으로 5년째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시민모임이 진행 중인 소송에 참여한 강제 노역 피해자 중 생존자는 이날 현재 2명뿐이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4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전남 나주장례식장, 발인은 1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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