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범죄자들의 사회
잠재적 범죄자들의 사회
  • 남희영 기자
  • 승인 2018.08.0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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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대윤 국장

[주간시사매거진 = 남희영 기자] 모든 사람은 언제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유혹에 이끌려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미래를 확실하게 알 수 없듯 어느 누구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거나 반대로 방어기제나 과잉방어를 하는 잠재적 피해자로 살아야 한다면 그 사회는 불신과 편견이 넘치는 사회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마음 한켠엔 안전불감증, 다른 한켠엔 안전과민증을 갖고 있다.

가뜩이나 아동학대 사건도 넘쳐나는데다 연이은 폭염 속에서 얼마 전 어린 아이들이 잇따라 차량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대부분 ‘부주의’가 원인이다. 이러한 안전부주의는 본의 아니게 사회 곳곳에서 화재사고, 교통사고, 의료사고, 부실공사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때론 안타깝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Me too’운동이 확산되고 성범죄자들이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는 이유로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거나, 조현병 환자가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하면 조현병 환자들이 일반인보다 특별히 더 위험하니 격리해야 된다고도 한다. 실제로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술을 먹어 심신미약이었다며 처벌이 약해지기도 하는데 말이다.

자칫 처벌받지 않는 범죄자들과 맞서다가 억울한 가해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아직도 법은 약자보다 강자 앞에서 조금 더 머뭇거리는 듯해 강자를 부러워하고 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겨질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여겨져 더욱 단단해지고 발전해온 이 사회를 대표하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강자들 중에는 선악을 떠나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힘을 지닌 자들일수록 잠재적 가해자가 될 소지가 높을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불쌍한 자이며, 나아가서 불의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처벌을 받는 자보다 더 불쌍한 자라고 했다. 양심의 가책으로 살아가느니 정의롭게 응징을 받는 것을 택하는 자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이라는 게 없는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거나 뒤에서 콧방귀를 낄 뿐이다.

얼마 전 가난한 약자들을 대변해오며 청렴한 정치인으로 칭송받던 노회찬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으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특권을 거부하며 살아온 그조차 잠재적 범죄자였었다니... 그래도 ‘안 걸린 놈이 걸린 놈 욕하는 직업이 국회의원’이라는 웃픈 현실을 반영하듯 많은 이들이 ‘더 심한 정치인들도 잘 살고 있는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정의가 보편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특정한 것과의 관계에 의해 다른 조건이 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점차 신뢰가 사라져가고 있다. 불의를 저지르는 자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비판해야 함과 동시에 자신도 언젠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받게 될지도 모를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불의에 맞서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잠재적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불의를 보면 피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가?S


[주간시사매거진 = 남희영 기자 / nhy@weekly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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