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시위 취재 기자 감금하고 폭행...“언론의 자유는 끝났다”
탈레반, 시위 취재 기자 감금하고 폭행...“언론의 자유는 끝났다”
  • 고천주 기자
  • 승인 2021.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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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시위 취재하던 기자들 감금·폭행...탈레반 “참수되지 않은 것 다행으로 여겨라”
탈레반에 끌려가 구타당한 아프간 기자들. (사진 : 에틸라트로즈)ⓒ뉴시스
탈레반에 끌려가 구타당한 아프간 기자들. (사진 : 에틸라트로즈)ⓒ뉴시스

 

[주간시사매거진=고천주 기자]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인권 시위를 취재하던 언론인들이 탈레반에 끌려가 구타와 감금을 당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슬람 가치를 존중'하는 한 언론 활동을 보장하겠다던 탈레반의 약속은 사실상 공수표가 됐다. 탈레반은 이들에 채찍질과 구타를 했으며, 심지어 시위를 구경하던 어린아이를 때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 등의 보도에 따르면, 아프간 매체 ‘에틸라트로즈(Etilaatroz)’ 소속 기자들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벌어진 여성 시위를 취재하던 도중 탈레반에게 끌려가 폭행당했다. BBC가 공개한 사진에는 기자들이 구타로 인해 몸 곳곳에 멍이 들어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전날 수도 카불 시위를 취재하던 중 탈레반 대원들에게 체포돼 경찰서로 끌려가 곤봉, 전깃줄, 채찍으로 두들겨맞았다고 전했다. 이들 중 한 명인 사진기자 네마툴라 나크디는 "탈레반 대원이 내 머리 위에 발을 올리고 내 얼굴을 콘크리트에 짓눌렀다"며 "죽을 것만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알렸다. 나크디가 자신이 맞는 이유를 묻자 한 탈레반 대원은 "참수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4시간 후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풀려난 그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국제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최소 14명에 달하는 현지 언론인들이 지난 이틀간 탈레반에게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고 밝혔다. 영국 BBC와 함께 일하는 기자들을 포함해 여러 언론인은 시위 현장 촬영을 금지당했고, 아프간 톨로뉴스의 사진기자 와히드 아흐마디는 탈레반에 구금된 뒤 카메라를 빼앗겼다.

스티븐 버틀러 CPJ 아시아 담당국장은 “앞서 탈레반은 아프간의 독립 언론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결국 이런 약속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빠르게 증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탈레반이 이전의 약속대로 행동하고, 기자들을 때리고 감금하는 것을 중단하고, 언론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것을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앞서 탈레반은 지난달 17일 폭압 통치를 한 과거와 다른 국정 운영을 공언하며 "모든 언론인들이 폭언이나 보복의 두려움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프간의 한 원로 언론인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미디어에 나오는 탈레반(지도부)과 거리에 있는 탈레반 사이의 차이는 크다"며 "아프간에서 언론의 자유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언론에서 탈레반을 비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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