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정서적 결핍, 희망을 절망으로
[발행인 칼럼] 정서적 결핍, 희망을 절망으로
  • 편집국
  • 승인 2018.10.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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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대윤 국장

[주간시사매거진 = 편집국]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지면 무언가 다시 바라게 된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스님들도 아마 영원한 ‘현재진행형’이어야만 이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희망도 꿈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어 안타깝다. 최근 5년간 수도권에서만 초등생 220명이 자살했다는 건 그야말로 ‘대참사’이다.

세계 최하위 출산율, 이혼률 증가, 우울증, 늘어가는 아동학대 등에 관한 소식들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훼손까지 더해져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 크게 확산됐다. ‘헬조선’을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권력이 행사하는 갑질에 손가락질하는 어른들도 정작 아이들에게는 정서적 갑질을 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여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고3 수험생도, 취준생도, 실직자도 아닌 초등학생의 자살에 놀라면서도 자가면역이 생긴 스스로에게 다시 또 놀란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 451명이 자살을 시도했다. 실제 고등학생이 76명, 중학생이 33명, 초등학생이 5명은 생명을 잃었다.

우리 사회가 학생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나 가족, 중독, 친구관계가 원인인 경우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가 학업문제였다. 성인들은 경제적 위기를 문제로 꼽지만 학생들은 정서적 위기까지 맞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이 우려되는 위험군의 학생이 최근 3년새 2배 가까이 늘어나 10만명에 육박한다.

지옥 같은 청년들의 현실은 ‘체념’의 연속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간신히 적응하며 버텨온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만회하듯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로인해 아이들에게 생겨난 또 다른 결핍은 개의치 않았다. 절망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서로를 혐오하고 원망해가면서 간신히 희망의 끈을 잡고 삶을 버텨간다.

희망(希望). 어떤 일을 이루거나 바라고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한다. 한자로 ‘바랄 망(望)’은 높은 곳(王) 위에서 멀리(亡) 바라본다(月)는 뜻이다. 누군가를 탓하고 못마땅하게 여겨 미워하고 불평한다는 뜻의 원망(怨望)이라는 단어에도 같은 의미의 한자를 사용한다. 탓을 하는 것도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생은 흙수저로 태어났으니 망한 것인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은 ‘사촌이 땅을 사면 (거름을 줘야하니) 배라도 아파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일제 시대에 축하를 의미하는 이 말이 질투와 시기의 의미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원래 우리 민족은 남이 잘되길 바랐고 잘못에 대한 책임도 남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단 한 명도 같은 사람이 없는데도 우리는 비슷한 것만을 희망하게 하다보니 경쟁률이 치열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바라는 대상과 시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주간시사매거진 = 편집국 / ntpress@weekly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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