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 남희영 기자
  • 승인 2017.01.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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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체납에 의료이용 제한···‘건강할 권리’는 없는가?

[주간시사매거진 = 남희영 기자]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세들어 살던 모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송파 세모녀’ 사건의 비극이 벌어진 것은 전세 보증금을 재산으로 반영하고 성별과 나이 등에도 점수를 매겨 실제 부담능력과 관계없이 건보료가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됐지만 소득이 있거나 미성년자 단독 세대인 경우에는 납부 의무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송파 세 모녀 법’인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및 긴급복지 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 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 개정도 제2, 제3의 송파 세 모녀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공단은 능력에 따른 건보료 징수는 합당한 것이며, 생계형을 포함한 체납자를 독려해 보험금을 징수하는 것은 공단이 당연히 해야 할 책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건강보험보장률 OECD 평균치인 80%를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건보료를 40%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중증질환, 실업자, 저소득층 등이 혜택을 볼 수 없다면 건강할 권리가 없는 무늬만 복지국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1232rf

장기 체납자 200만 세대, 절반 이상은 ‘생계형’

연간 1000억 원 이상 건강보험료 체납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6개월 이상 장기 체납자 중 절반 이상이 ‘생계형 체납’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17일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세상네트워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주빌리은행 등과 함께 개최한 ‘건강보험체납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김선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은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결과 및 제도개선 방안’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또한 김 연구원은 ‘건강보험체납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안’을 통해 공단의 체납관리가 부실하고 관리를 위한 관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연구원은 ▲건강보험 6회 이상 체납자에 대한 체납 보험료 환수, 연체료 부과, 급여혜택 중단 등의 조치 폐지 ▲지역가입자의 경우 보험료 체납 시 세대원까지 급여 제한 하는 조치 폐지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 등을 주장했다.

특히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대책으로는 ▲국민의 3%에 불과한 의료급여 수급자 확대 ▲차상위계층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험료 대납 ▲일시적 실업, 무소득의 경우 보험료 납부유예 완화 등 사전 예방조치 시행 ▲생계형 체납자의 경우 결손처분 시속 처리 등을 제시했다.

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할 경우 보험료 환수와 연체료 부과를 조치하고, 급여 혜택을 제한하고 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7월 누적 기준 ‘6개월 이상’ 장기 체납자는 약 138만4000세대로, 총 체납액은 2조4131억원에 달한다. 체납액을 지난 2008년말 1조6404억원과 비교하면 7년6개월동안 연평균 1030억원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건보료 체납자의 상당수가 ‘생계형 체납’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기준 체납보험료의 금액 기준 약 87%가 지역가입세대로 집계됐으며, 지역 가입자의 세대당 누적 체납액은 2007년 70만원에서 지난해 7월 157만원으로 10년새 2배 이상 증가했다. 또 지역 가입자 중 월 보험료 5만원 미만 체납자는 세대 기준 전체의 67.4%, 체납액 기준 55.2%로 집계됐다. 2년 이상 장기 체납하는 비중 동 지역 가입자 체납 세대의 53.4%, 체납액의 78.0%에 달한다. 체납자의 절반 이상이 ‘만성화’된 체납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건보료 징수율 99%, 제도적으로는 ‘비효율’

반면 국민건강보험 징수율은 지난 2010년 이후 99%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다른 선진국 사회보험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체납관리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건보료 체납은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 먹는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와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문제지만, 건강보험 제도가 사회보험 성격을 갖는 만큼 빈곤과 취약성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누적 체납은 체납자들에게 고통을, 제도적으로는 비효율을 낳고 있는 반면 매년 새로 발생하는 체납이 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생계형 건보료 체납에 대한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3년 이상 장기체납자에 대한 결손 처분 ▲의료급여 수급권자 확대와 보험료 면제 ▲지역가입 세대 보험료 감면 확대 등을 통해 체납자 발생과 장기체납을 억제 해야한다고 밝혔다. 또 과도한 체납 처분으로 인해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건강권이 침해 받지 않도록 ▲체납자 통장 압류 요건 준수 ▲장기체납으로 인한 급여 제한 규정 폐지 등을 제안했다.

김 연구원은 “건강보험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해 보험료 부담을 누진화하고, 장기적으로 조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전가영 변호사는 미성년 체납자에 대한 독촉, 고지처분의 위헌성과 개선방안, 결손처분 기준의 개선방안, 체납자에 대한 통장압류 해소방안 등을 언급했다.

전 변호사는 “현행법에 따르면 부모가 살아있는 미성년자가 부득이하게 개별 세대로 등록된 경우 재산과 소득에 상관없이 건강보험료 연대납부의무를 부담하게 되는데, 이러한 규정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건강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인간의 존엄성, 평등권에 반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에게까지 연대납부의무를 부과하는 현 규정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사회보험 취지에 걸 맞는 개선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결손처분 기준에 대해서는 “담당공무원이 체납액을 갚을 수 있는 여력을 확인하는 것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통장압류에 대해서는 “민사집행법상 150만원이하 예금은 압류금지채권으로 규정됐기 때문에 건보 체납으로 인한 통장압류도 이 같은 기준을 지키고, 위법한 통장압류는 해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232rf

단 “성실 납부자에 피해줘선 안돼”

생계형 체납자.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통상적으로 ‘월 건보료 5만원 이하임에도 건보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세대’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공단은 공식 기준을 정하지 않고 ‘수입으로 기본 의식주, 공과금 등을 해결할 수 없는 세대’라는 포괄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에 이날 토론회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 징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공단에 따르면 2016년 7월 현재 6회 이상 체납(누적)은 지역가입자의 경우 134만여 세대(전체 지역세대의 18.3%), 직장가입자의 경우 3만7,000개소(전체 건보적용 사업장의 2.7%)에 달한다. 이 중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생계형 체납으로 정의하는 월 보험료 5만원 미만 세대는 67.4%로, 이들이 체납한 건보료는 전체 체납액(2조4,131억원)의 55.2%를 차지하고 있다.

공단은 이같은 생계형을 포함한 체납자를 독려해 보험금을 징수하는 것 역시 공단의 책무이며, 이를 통해 건보제도가 지속되고 성실납부자의 피해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단 징수팀 김후식 부장은 “건보료 징수가 안되면 재원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일반 국민이 병원을 이용하는데 차질이 생긴다. 체납보험료 징수는 공단이 당연히 해야할 책무”라며 “(국민이) 능력에 따라 건보료를 부담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체납이 6회 이상이면 의료기관 이용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그 전에 징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개개인의 사정을 모두 고려할 순 없지만 자체 실태조사를 통해 체납자에 대한 히스토리를 분석해 차별화한 징수를 하고 있다는 게 김 부장의 설명이다.

또한 김 부장은 “징수를 통해서만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며 “재정이 불안정하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성실납부자의 보험료도 인상된다”고 말했다. 또한 기획재정부에서 진행하는 정부경영평가를 잘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징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공단의 보험료 징수 외 정부 지원 등으로 안정적 재원확보가 된다면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결손처분 확대 등을 강화할 수 있다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 복지부를 대표해 참석한 보험정책과 이창준 과장은 건보료 체납 문제를 부과체계 개편과 연계해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단 재정운영위원회를 통해 장기체납자를 계속 안고가는 것과 결손처분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분석을 요청한 상태”라며 “재정운영위가 가입자 친화적이기 때문에 권익보호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성년자에게까지 불이익이 가는 등의 체납문제를 부과체계 개편과 연계해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보장률, OECD·EU 평균에 못 미쳐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으로 63.2%인 건강보험 보장률은 전체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평균 78%, 유럽연합(EU) 주요국 평균은 82%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국민 2000명의 인식을 조사한 ‘2016년도 건강보험제도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건강보험 보장률은 평균 73.7%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보장률 확대를 위해서는 건강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장률 80%를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건보료를 40%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복지부는 이같은 답변을 내놨다. 전체 보장률 80%달성을 위해 연간 약 16조 8000억원의 보험재정이 추가 소요될 것이며, 이를 위해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게 복지부의 계산이다.

건강보험재정은 2011년부터 5년 연속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20조원을 투입하면 보험료 인상 없이 건강보험보장률을 80%까지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단기간 보장율 강화보다는 사회적 합의 등으로 중장기적인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늘어난 건강보험 혜택, 장기체납자는 ‘그림의 떡’

2017년부터 건강보험 혜택이 더 늘어날 계획이다. 먼저 올해부터 임산부 외래 진료지는 1인당 평균 44만원에서 24만으로 줄어든다. 대학병원(40%), 종합병원(30%), 병원(20%), 동네의원(10%)의 본인부담률이 각각 20%씩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에는 간암을 진단받은 경우, 추적 관찰 시, 4대 중증질환자 등에 한하여 간 초음파 건강보험이 적용되었지만 오는 10월부터는 간염, 간경화 등 만성 간 질환까지 간 초음파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될 예정이다.

정신질환 유병률이 증가하면서 정신 치료 본인부담률이 20%로 낮아진다. 비급여 정신요법에도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며,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인지치료와 행동장애 등에 대해서도 보험이 적용될 계획이다. 또한 4대 중증질환인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건강보험 보장이 확대되고, 혼자서 관리하기 힘든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도 동네 의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이 가능하다. 또한 치료 또는 재활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필요한 휠체어, 보행기 등 보장구의 무료 대여와 구입 시 90%를 보험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추가혜택도 건보료에 연체이자율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생계형 장기체납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에게는 가혹한 보험료 연체이자율의 합리적인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4대보험의 대표적인 건강보험료 연체이자율의 경우 최초 30일간은 매일 0.1%의 연체금이 붙고 30일 이후에는 매일 0.03%의 연체금으로 최대 9%의 연체금이 부과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광수 의원(국민의당)은 서민들의 4대보험 연체이자율을 낮춰 보험료 연체금 납부부담을 경감시키도록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등 ‘4대 보험 연체이자율 감면’ 법안을 지난달 대표 발의했다. 안타깝게도 장기체납자들의 경우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쉽게 병원에 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1232rf

제2, 제3의 송파 세 모녀 사건 우려

체납자의 92%가 몸이 아파도 병원을 못 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한 장기체납자인 임산부는 ‘고운맘카드’도 받을 수 없다. 성년이 되면 부모의 건보료 체납액 납부를 독촉받기도 한다.

돈이 없으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한 장기체납자의 건강은 더 악화되고, 가산금 부과와 재산 압류에 이어, 일자리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만들어진 건강보험이 일부 생계형 체납자들에 대해서는 건강권을 저당잡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2014년 2월에 터진 ‘송파 세 모녀 사건’이다. 질병을 앓으면서 수입도 없는 상태의 세 모녀는 지하 셋방에서 번개탄을 피워 놓고 동반자살했다. 이들은 유서와 함께 공과금 70만원을 남겼다.

60세, 35세, 32세의 이들 세 모녀는 전세 약 3천만 원 주택의 세입자로 연 소득이 500만원 이하인 지역가입자였다. 성과 연령으로 2만 6천 원, 재산 등으로 인해 2만 3천 원이 부과되면서 매월 약 5만원의 건강보험료가 부과됐다고 추정된다. 질병으로 인한 실직 상태로 소득이 없었던 세 모녀는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되어 ‘조건부 수급’의 기준에 의해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실시했다. ‘송파 세 모녀 법’인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및 긴급복지 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 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이 2014년 12월 30일 개정·제정됐다.

그러나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낮은 재산 기준 등 까다로운 선정 조건은 통과해야 하며, 재산의 소득환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근로능력평가는 그대로 남겨졌다. 시민사회단체는 오히려 정부는 수급비의 각 급여항목의 주무부처를 쪼개서 급여에 대한 신청과 이의 신청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개정 이후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수급권자의 5년간 처분 재산을 조사해 소비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재산은 소득으로 환산하고,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수급자가 얻는 자활소득 중 30%를 공제하여 탈수급을 촉진하는 자활장려금도 폐지했다. 최근 들어서도 송파 세 모녀와 비슷한 죽음을 맞는 이들의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송파 세 모녀 법으로는 송파 세 모녀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는 7월 건강보험이 시행된 지 40년이 된다. 전 국민 의료보장은 28년째다. 그러나 아직도 보험료를 낸 만큼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주간시사매거진 = 남희영 기자 / nhy@weekly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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