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여성만의 문제인가?
낙태, 여성만의 문제인가?
  • 남희영 기자
  • 승인 2016.10.2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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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사매거진 = 남희영 기자]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바라보는 의료계와 정부 입장

의료계 ‘낙태 범위 확대’ VS 정부 ‘예방과 처방 강화’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모든 책임도 여성이 짊어져야 할까? 낙태 시술은 출산과 육아가 힘든 환경으로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는 엄연히 불법이지만, 의료계 추산으로 한 해에 약 17만 건의 시술이 행해지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3일 인공임신중절수술(불법 낙태수술)을 한 의사에게 최대 12개월까지 자격을 정지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고자 했으나 지난 18일 전면 백지화했다. 의료계와 여성계 등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사회적 파장이 크게 일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에서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했던 8가지 예시 중 불법 낙태 수술과 관련된 부분을 빼고 현행 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복지부, ‘불법낙태’ 처벌 강화해야

정부가 불법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던 계획에서 한발 물러섰다. 복지부는 지난달 23일 의료인에 대한 자격정지기간을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의료법’ 관계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복지부는 개정안을 통해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등 사용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처방·투약 ▲성폭력범죄 ▲대리수술 ▲오염·유효기기간 경과 의약품 사용 ▲임신중절수술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복용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 등 8가지 유형으로 세부화했다.

문제는 현행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은 ▲우생학적·유전적 정신장애·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 ▲근친상간 ▲산모 건강위험 등에 한해 임신 24주 내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이 개정안에 임신중절 수술이 포함된 부분이다. 하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성단체와 현실을 무시한 잣대로 진료행위를 통제하려 한다는 의료계의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복지부는 이 같은 논란이 벌어지자 19일 의료계와 간담회를 열고 의견수렴에 나섰다.

의료계, 낙태 범위 넓혀야

의료계에서는 낙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선진국 대부분이 낙태수술에 대해 임신주수에 따라 일정부분 허용하고 있고 일본 같은 경우는 사회경제적 사유까지도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인공임신중절의 적법한 사유가 거의 없다보니 원치않은 임신을 한 가정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미흡한 성교육과 사후 피임약 처방의 번거로움 등의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북지부도 현행법상 낙태가 불법이라는 점에서 현행법을 지키면서 낙태를 예방할 수 있는 사후 피임약의 일반약 허용 등의 보완책의 필요성과 처벌 강화가 불가피하다면서도 낙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기결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등 낙태를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보니 대부분 불법으로 시술돼 의료 사각지대를 택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시술 과정에 생긴 문제는 법위반 사항이기 때문에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문화 특성상, 혼자라도 아이를 키우겠다는 미혼모들의 경제적 자립이 어렵고 정부지원도 미미하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돌봄 서비스와 양육비, 자립촉진비용 등으로 2인 가족이 월소득 136만원 이하일 때 자녀가 12세 미만이면 월 10만원, 5세 이하면 15만원 받는 것이 전부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성만 처벌하는 것도 문제

복지부의 2015년 인공임신중절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가운데 7명(69%)은 임신중절을 원하지 않는 임신과 같은 개인적 사유 때문에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공임신중절수술 이유로는 원하지 않은 임신(43.2%)이 가장 많았고, 경제적 사정(14.2%), 주변의 시선(7.9%),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서(3.7%)가 꼽혔다. 산모의 건강문제는 16.3%, 태아의 건강문제는 10.5%에 불과한 상태다.

복지부는 ‘임신중절수술’은 명백한 비도덕적 의료행위인 만큼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의사들은 “낙태 수술 전면 중단” 각오를 밝혀 파문이 일었다. 의사협회는 불법낙태 수술을 중단하면 그 피해는 오히려 여성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낙태를 한 여성을 살인마로 몰아가는 사회적 인식에 반대하는 여성단체들은 여성을 볼모로 삼은 무책임한 행태라며 정부개정안과 의료계의 대응을 모두 비판했다. 임신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남성을 빠져나가고 여성과 의료인만 처벌받는 현행법을 문제 삼았다. 당사자인 ‘여성의 권리’는 사라지고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건강과 출산 결정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의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거리로 나섰다. 특히 형법상 낙태죄는 의료인과 임신중절 여성에게만 책임을 떠맡기고 있고, 모자보건법에서도 인공임신중절을 하는 여성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 등 권리 없이 책임만을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 안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여성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현행법 체계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범죄로 규정하거나 배우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삭제할 것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원치 않는 임신을 사전에 예방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주간시사매거진 = 남희영 기자 / nhy@weekly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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